진영간 표준 전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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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4-02-19 23:18 조회2,4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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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간 표준 전쟁의 역사
기술 우위보다 마케팅 잘 한 곳이 승리… ‘적과의 동침’ 일반화오늘날 전 세계 기업들은 저마다 해당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술표준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표준 대열에 참여하느냐, 탈락하느냐’ 여부가 곧 기업과 더 나아가 국가의 성쇠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선진 기업들은 21세기 기업 경쟁의 화두인 기술표준을 장악하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고 있다.
산업을 주도하는 기술표준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결정된다. 첫째는 기업이나 단체 등 이해 당사자가 일련의 협상을 통해 서로 다른 규격들을 통합하거나 명시화해서 일괄 공표하는 ‘협약 표준’(de jure standard)이다. 컴퓨터 네트워크나 이동통신시스템 등의 기술표준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널리 알려진 업계 표준, 즉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IBM과 같이 해당 시장에서 지배적인 공급자나 수요자가 일방적으로 확정한 기술규격이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다. IBM의 개인용 컴퓨터(PC), MS의 윈도(Windows)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끼워넣기로 성공한 익스플로러
이러한 기술표준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의 역사는 1976년에 있었던 소니와 마츠시타의 격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전자업계의 양대 라이벌이었던 소니와 마츠시타는 비슷한 시기에 베타(Beta)와 VHS라는 VTR 기술표준 규격을 시장에 내놓았다.
화면의 선명도나 저장 용량의 크기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소니의 베타방식이 마츠시타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소니는 기술력을 믿은 나머지 원천기술을 공개하지 않고 독점을 노렸던 반면, 마츠시타는 기술의 호환성을 강조해 자사의 기술을 다른 가전업체들에게 공개했다. 결과는 마츠시타의 편이었다. 소니는 가정용 VTR 시장에서 마츠시타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말에는 PC의 표준을 놓고 IBM과 애플이 일대 혈전을 벌인 사례가 유명하다. 애플은 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란 두 젊은이가 세운 회사다. 이들은 허름한 차고에서 세계 최초로 PC를 상용화하면서 80년대 중반까지 세계 PC산업을 이끌었다. 83년에 발표된 매킨토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20개월 만에 50만대가 팔렸고, 그중 17만대가 미국의 학교에 널리 보급되면서 애플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IBM이 시장에 나와 있는 PC 부품들을 조합할 수 있는 개방형 표준 구조를 제정하고, 인텔의 8086프로세서와 MS의 DOS를 중앙처리장치와 운영체제로 채택해 PC를 생산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애플이 PC 시장의 독점을 노려 기술표준을 외부기업에 공개하지 않은 반면, IBM은 표준화된 부품들로 조립만 하면 누구든지 PC를 만들 수 있도록 기술을 업계에 공개함으로써 IBM PC의 수요기반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렇게 시작한 IBM은 애플의 아성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본격적인 IBM PC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Explorer)와 선발주자인 ‘넷스케이프’(Netscape)가 웹브라우저 시장을 놓고 표준 경쟁을 벌였다. ‘넷스케이프’는 인터넷이 급성장했던 90년대 초반 전 세계 웹브라우저 시장의 8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제품으로 군림했다.
당시 PC 운영 시스템에 주력하고 있던 MS는 향후 인터넷이 널리 확산되면 웹브라우저 없이는 인터넷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익스플로러라는 웹브라우저를 만들어 무료로 일반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넷스케이프의 상승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래서 취한 전략이 바로 윈도98에 익스플로러를 끼워넣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이 넷스케이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해야 했지만 당시에는 초고속 통신망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기다려야 했다. MS는 바로 이 점을 간파했다. 윈도98을 PC에 설치하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웹브라우저가 설치돼 사용자들이 손쉽게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
MS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사운드·이미지·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홈페이지를 위한 표준을 발 빠르게 익스플로러에 포함시켜 넷스케이프 사용자들을 뺏어왔다. 결국 넷스케이프사는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98년 말 AOL에 매각되는 비운을 맞았다.
표준화 동참은 선택 아닌 필수
이같은 기술표준 전쟁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제 기업들이 기술표준화 대열에 동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기술이 거대화·복잡화·전문화함에 따라 대규모 R&D에 대한 투자 위험을 줄이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첨단 기술정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국제 분업을 통한 사업 시너지 등도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2002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1만8천여종의 국제표준 가운데 국내 표준이 채택된 건수는 한글 로마자 표기법과 동영상 압축 등 몇 건에 불과하다.
국제표준 제정을 주도하는 ISO 기술위원회(TC)와 분과위원회(SC)의 정회원 가입률도 62.3%에 그쳐 미국(81.5%), 일본(80.5%) 등 선진국들은 물론 중국(68.8%)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다.
표준화 대열에서 한 번 낙오하면 좀처럼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기업들이 선진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경쟁전략을 효과적으로 병행해 최대한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소니-마츠시타 전쟁 막후 스토리]
日 학생층 파고들며 VHS가 시장 압도이제는 경영학원론에 등장할 만큼 유명해진 소니와 마츠시타의 표준 전쟁은 ‘기술보다는 마케팅’이라는 교훈만 알려지고 있지만 이에 얽힌 막후 스토리도 그에 못지않게 재미있다. 당시 일본 업체들끼리 싸움이 벌어지자 보다 못한 일본 정부가 개입, 소니의 베타방식으로 통일할 것을 종용했다.
당연히 마츠시타는 반발했고 골치가 아파진 일본 정부도 손을 놓아버렸다. 마츠시타는 그 틈을 이용해 미국 시장을 석권했다. 특히 ‘VHS 방식의 테이프 한 개면 미식 축구 한 게임을 전부 담을 수 있다’는 4시간 녹화모드(LP MODE)가 잘 먹혀들었다. 소니는 뒤늦게 독점주의에서 탈피하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이미 배는 떠나간 뒤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시장의 결판은 이미 학생층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당시 일본 학생들은 테이프를 서로 교환해 보는 현상이 시작됐는데, 베타방식의 VTR를 가진 학생들은 테이프 교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지메(따돌림)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것. 그들은 “너희 집은 아직도 베타냐”라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한국 기업과의 연관성도 흥미롭다. 마츠시타가 금성사(현 LG전자)와 삼성전자에 IC와 헤드 제공을 제안하자 두 회사는 곧바로 VHS 진영에 합류했다. 하지만 당시 두 회사와 경쟁을 하고 있던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는 소니에 베타방식 제품 생산을 제안, 도시바사의 부품을 받아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베타방식을 조립해 생산했다.
대한전선은 소니에게 금성사와 같이 만들겠다는 추가 제안을 했으나, 소니의 거절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베타방식은 가격이 비싸 시장에서 고전을 했고, 이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는 대우전자로 넘어가면서 베타를 버리고 VHS방식으로 전환했다. 금성사로서는 행운이었던 셈이다.
서광원 기자·araseo@joongang.co.kr- Economist 724 호- Internet Media Company Joins.com, ⓒ 2004 중앙일보 & Joins.com,
ⓒ[이코노미스트 02/09 11:31]
기술 우위보다 마케팅 잘 한 곳이 승리… ‘적과의 동침’ 일반화오늘날 전 세계 기업들은 저마다 해당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술표준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표준 대열에 참여하느냐, 탈락하느냐’ 여부가 곧 기업과 더 나아가 국가의 성쇠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선진 기업들은 21세기 기업 경쟁의 화두인 기술표준을 장악하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고 있다.
산업을 주도하는 기술표준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결정된다. 첫째는 기업이나 단체 등 이해 당사자가 일련의 협상을 통해 서로 다른 규격들을 통합하거나 명시화해서 일괄 공표하는 ‘협약 표준’(de jure standard)이다. 컴퓨터 네트워크나 이동통신시스템 등의 기술표준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널리 알려진 업계 표준, 즉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IBM과 같이 해당 시장에서 지배적인 공급자나 수요자가 일방적으로 확정한 기술규격이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다. IBM의 개인용 컴퓨터(PC), MS의 윈도(Windows)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끼워넣기로 성공한 익스플로러
이러한 기술표준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의 역사는 1976년에 있었던 소니와 마츠시타의 격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전자업계의 양대 라이벌이었던 소니와 마츠시타는 비슷한 시기에 베타(Beta)와 VHS라는 VTR 기술표준 규격을 시장에 내놓았다.
화면의 선명도나 저장 용량의 크기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소니의 베타방식이 마츠시타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소니는 기술력을 믿은 나머지 원천기술을 공개하지 않고 독점을 노렸던 반면, 마츠시타는 기술의 호환성을 강조해 자사의 기술을 다른 가전업체들에게 공개했다. 결과는 마츠시타의 편이었다. 소니는 가정용 VTR 시장에서 마츠시타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말에는 PC의 표준을 놓고 IBM과 애플이 일대 혈전을 벌인 사례가 유명하다. 애플은 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란 두 젊은이가 세운 회사다. 이들은 허름한 차고에서 세계 최초로 PC를 상용화하면서 80년대 중반까지 세계 PC산업을 이끌었다. 83년에 발표된 매킨토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20개월 만에 50만대가 팔렸고, 그중 17만대가 미국의 학교에 널리 보급되면서 애플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IBM이 시장에 나와 있는 PC 부품들을 조합할 수 있는 개방형 표준 구조를 제정하고, 인텔의 8086프로세서와 MS의 DOS를 중앙처리장치와 운영체제로 채택해 PC를 생산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애플이 PC 시장의 독점을 노려 기술표준을 외부기업에 공개하지 않은 반면, IBM은 표준화된 부품들로 조립만 하면 누구든지 PC를 만들 수 있도록 기술을 업계에 공개함으로써 IBM PC의 수요기반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렇게 시작한 IBM은 애플의 아성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본격적인 IBM PC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Explorer)와 선발주자인 ‘넷스케이프’(Netscape)가 웹브라우저 시장을 놓고 표준 경쟁을 벌였다. ‘넷스케이프’는 인터넷이 급성장했던 90년대 초반 전 세계 웹브라우저 시장의 8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제품으로 군림했다.
당시 PC 운영 시스템에 주력하고 있던 MS는 향후 인터넷이 널리 확산되면 웹브라우저 없이는 인터넷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익스플로러라는 웹브라우저를 만들어 무료로 일반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넷스케이프의 상승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래서 취한 전략이 바로 윈도98에 익스플로러를 끼워넣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이 넷스케이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해야 했지만 당시에는 초고속 통신망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기다려야 했다. MS는 바로 이 점을 간파했다. 윈도98을 PC에 설치하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웹브라우저가 설치돼 사용자들이 손쉽게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
MS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사운드·이미지·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홈페이지를 위한 표준을 발 빠르게 익스플로러에 포함시켜 넷스케이프 사용자들을 뺏어왔다. 결국 넷스케이프사는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98년 말 AOL에 매각되는 비운을 맞았다.
표준화 동참은 선택 아닌 필수
이같은 기술표준 전쟁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제 기업들이 기술표준화 대열에 동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기술이 거대화·복잡화·전문화함에 따라 대규모 R&D에 대한 투자 위험을 줄이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첨단 기술정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국제 분업을 통한 사업 시너지 등도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2002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1만8천여종의 국제표준 가운데 국내 표준이 채택된 건수는 한글 로마자 표기법과 동영상 압축 등 몇 건에 불과하다.
국제표준 제정을 주도하는 ISO 기술위원회(TC)와 분과위원회(SC)의 정회원 가입률도 62.3%에 그쳐 미국(81.5%), 일본(80.5%) 등 선진국들은 물론 중국(68.8%)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다.
표준화 대열에서 한 번 낙오하면 좀처럼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기업들이 선진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경쟁전략을 효과적으로 병행해 최대한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소니-마츠시타 전쟁 막후 스토리]
日 학생층 파고들며 VHS가 시장 압도이제는 경영학원론에 등장할 만큼 유명해진 소니와 마츠시타의 표준 전쟁은 ‘기술보다는 마케팅’이라는 교훈만 알려지고 있지만 이에 얽힌 막후 스토리도 그에 못지않게 재미있다. 당시 일본 업체들끼리 싸움이 벌어지자 보다 못한 일본 정부가 개입, 소니의 베타방식으로 통일할 것을 종용했다.
당연히 마츠시타는 반발했고 골치가 아파진 일본 정부도 손을 놓아버렸다. 마츠시타는 그 틈을 이용해 미국 시장을 석권했다. 특히 ‘VHS 방식의 테이프 한 개면 미식 축구 한 게임을 전부 담을 수 있다’는 4시간 녹화모드(LP MODE)가 잘 먹혀들었다. 소니는 뒤늦게 독점주의에서 탈피하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이미 배는 떠나간 뒤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시장의 결판은 이미 학생층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당시 일본 학생들은 테이프를 서로 교환해 보는 현상이 시작됐는데, 베타방식의 VTR를 가진 학생들은 테이프 교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지메(따돌림)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것. 그들은 “너희 집은 아직도 베타냐”라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한국 기업과의 연관성도 흥미롭다. 마츠시타가 금성사(현 LG전자)와 삼성전자에 IC와 헤드 제공을 제안하자 두 회사는 곧바로 VHS 진영에 합류했다. 하지만 당시 두 회사와 경쟁을 하고 있던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는 소니에 베타방식 제품 생산을 제안, 도시바사의 부품을 받아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베타방식을 조립해 생산했다.
대한전선은 소니에게 금성사와 같이 만들겠다는 추가 제안을 했으나, 소니의 거절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베타방식은 가격이 비싸 시장에서 고전을 했고, 이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는 대우전자로 넘어가면서 베타를 버리고 VHS방식으로 전환했다. 금성사로서는 행운이었던 셈이다.
서광원 기자·araseo@joongang.co.kr- Economist 724 호- Internet Media Company Joins.com, ⓒ 2004 중앙일보 & Joins.com,
ⓒ[이코노미스트 02/0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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